나는 호가창 중독인가?
만약 이 포스팅을 클릭해 들어왔다면 이미 당신은 호가창 중독일 가능성이 높다.
호가창 중독이란 간단히 말해, 주가 호가창을 하루에도 수십번, 또는 수백번 확인하며 일상생활에 지장을 겪는 경우다. 잠을 잘 자지 못하는 경우부터 일이나 공부에 집중하지 못해 능률이 떨어지는 경우까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실제로 호가창 중독은 굉장히 흔하다.
사실 호가창을 계속해서 들여다보는 것이 그렇게까지 고쳐야 할 일인지 의문을 갖는 경우도 많다. 주가가 빠르게 오르내리는 모습을 보면 사실 꽤 재미있다. 매물대를 뛰어넘는지 관찰하는 것부터 주가가 내 예상대로 흘러가는 지 아닌 지 지켜보는 건 어디서 느낄 수 없는 새로운, 자극적인 흥미거리다.
이렇게 자극적인 요소 때문에 우리는 더 호가창에 중독되는 것 같다. 필자는 최근까지도 심각한 호가창 중독을 경험했고, 최근에서야 호가창 중독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다. 필자의 경험에 미루어 왜 우리가 호가창 중독에서 벗어나야 하는 지, 그 방법은 무엇인 지에 대해 가볍게 이야기 해볼까 한다.
호가창 중독에서 벗어나야 하는 세가지 이유
호가창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크게 세가지 포인트에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첫째, 에너지 소모다. 호가창을 들여다보면 우리의 뇌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뇌(brain)에 대해 사람들이 가장 크게 오해하는 것이 있다. 바로, 우리 뇌의 작동 원리다. 놀랍게도 우리의 뇌는 잠을 잘 때와 명상을 할 때를 제외하고는 항상 일하고 있다. 누워서 스마트폰으로 유튜브 쇼츠나 인스타그램 릴스를 보고 있으면 쉬는 것 같지만 뇌의 입장에서는 전혀 쉬는 게 아니다. 우리의 뇌는 상시적으로 패턴을 찾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이다. 주식 호가창을 보고 있으면 비록 누워 있더라도, 우리의 뇌는 쉼 없이 호가창에 나오는 다음 숫자와 주가의 다음 방향을 예측하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한 에너지 소모는 우리가 활발히 기업 분석을 시행할 때의 에너지 소비량과 같다. 활발히 공부를 하는 것과 정확히 같은 양의 에너지를 호가창을 볼 때 사용하는 것이다. 뇌는 그저 계속해서 인지된 사실을 기억하려하고 패턴을 찾으려고 하는 수동적인 기계다.
둘째, 감정 조절의 어려움이다. 주가가 하락하면 화가나고, 오르면 불안하다. 이건 전세계 공통, 인류 공통의 문제다. Reddit이나 Quora에서도 같은 질문과 토론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투자자가 주식 호가창을 보고 있노라면 드는 감정이 있다. 주가가 내리면 더 내릴까봐 걱정, 왜 조금 더 기다리다가 사지 않았는지에 대해 분노한다. 반대로 주가가 오르면 다시 내려갈까 걱정돼 불안하다. 지금 팔았는데 더 오르면 어떡하지? 지금 안팔았는데 내려버리면 어떡하지? 이 때 옆에 있던 이성친구나 가족이 나에게 말을 걸면 예민해질 수 밖에 없다. 화를 내거나 감정적으로 대응하게 되고 심각한 경우 대화를 거부하게 된다. 감정적 에너지 전부를 호가창을 들여다보며 소진했기 때문이다.
셋째, 이 세상에는 호가창보다 중요하고, 건설적인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기업 분석이다. 앞서 이야기했지만 호가창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뇌는 충분한 에너지를 소비하고 있다. 포도당과 같은 물리적, 화학적 에너지도 그렇지만 우리의 뇌는 호가창을 보며 감정적 에너지 또한 빠른 속도로 소비한다. 정확히 같은 양의 에너지를 소비하며 기업을 분석할 수 있는데, 우리는 귀찮다는 이유로, 호가창이 재미있다는 이유로 기업 분석에 게으르다. 호가창을 보며 에너지를 모두 소진했기 때문에 더 이상 기업분석을 위한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럼 결국 잘못된 주식을 사게 되고 투자자는 다시 호가창 중독에 빠진다. 악순환이다.
호가창 중독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
필자는 정말 수많은 방법으로 호가창 중독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했다. 증권앱 지우기, 크롬 익스텐션을 통한 접속 차단, 명상, 운동하기 등등. 하지만 그 어떤 것도 필자를 호가창 중독에서 꺼내주지 못했다. 그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바로, 호가창 중독은 너무나도 강력한 나머지 누구도 중독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 필자는 호가창에서 자유로워졌다. 이제는 더 이상 호가창을 보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않는다. 하루에 정말 많아야 5번 정도 본다. 보통은 1-2번으로 끝난다. 정말이다.
필자가 사용한 방법은 단순하지만 강력했다. 하지만 누구도 쉽게 따라할 수 없을 것이다. 필자가 사용한 방법은 바로, 끊임 없는 기업 분석이다.
필자는 요즘 하루 종일 기업에 대해 고민하고 검색하며 포스팅을 올리며 정리한다. 모르는 제품과 산업에 대해 구글링과 유튜브 검색을 통해 공부한다. 만약 기업을 분석하다 지치면, 이 포스팅과 같이 투자 철학에 대한 나만의 생각을 정리하는 글을 쓴다. 계속 나 자신을 바쁘게 만든다. 어차피 이 순간에도 내 뇌는 어딘가에 에너지를 쓰고 있다. 에너지를 쓰는 곳이 아무런 쓰잘데기 없는 호가창만 아니면 된다. 내가 뭘 하든 피로는 쌓이겠지만 결국 포스팅 하나 더 남기고, 지식 하나 더 얻는 데 나의 에너지는 사용된다.
이 글을 읽는 분들도 충분히 머리로는 이해하는 부분일지도 모른다. 단지 실천하기 어려울 뿐이다. 무언가를 꾸준히 지속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하루, 이틀 하기는 쉬워도 1주, 2주, 하물며 1개월 동안 유지하는 건 정말, 정말 어렵다.
하지만 그걸 해내는 사람은 인생에서 뭔가를 이룰 것이고, 해내지 못하는 사람은 시궁창 같은 현실에 머무를 것이다. 적어도 내가 살아온 경험을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렇다. 지루한 부분과 재미없는 부분을 이겨낸 사람만이 뭔가를 얻는다. 실패를 하더라도 뭔가를 얻고 실패한다. 건성건성하고 수박 겉핥기로 하면 실패를 해도 얻는 게 없다. 그냥 시간만 낭비한 것이다.
이게 필자가 생각하는 호가창 중독의 유일한 극복 방법이다. 끈기를 가지고 끊임 없이 하나에 집중하는 것. 그리고 투자자가 선택한 그 하나가 ‘기업 분석’이 될 때, 우리는 비로소 주식 투자자로써 성장하는 개미가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