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회상하며
필자는 투자 기간으로 치면 고수가 되었을 경력이지만 부끄럽게도 그저 그런 수익률을 기록하는 중급 투자자다. 정말 다양한 투자 이론과 철학으로 주식시장에서 온갖 수난 다 겪으며 이제야 어느 정도 나만의 투자 철학을 설립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그렇다고 연 50-100%의 경이로운 수익률을 기록하는 수준은 아니다. 반대로, 허무맹랑한 미래 전망과 사업 계획을 가진 사업에 투자할 정도로 한심한 투자자도 아니다. 아마, 고수와 하수 중간 어디엔가, 애매모호한 곳에 나의 위치가 있을 것이다.
필자의 투자 첫 10년을 돌이켜보면, 참 어리석고 바보같은 시간들이었다. 그것은 필자의 투자 수익률이 낮아서도 아니었고, 아무런 근거 없이 투자를 해서도 아니었다. 차라리 투자 수익률이 너무 낮았더라면, 허황된 전망을 가지고 어떤 기업에 투자했더라면, 나의 투자 실력은 더 빨리 성장 했으리라. 더 많이 더 빠르게 반성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애매한 투자 성과와 반복되는 빈약한 투자 근거로 인해 나의 투자자로써의 성장은 늦어지게 되었다.
첫번째 실수, 너무 많은 책을 읽다.
워렌 버핏은 어릴 적 주식에 대해 처음 알게 되면서, 주변 도서관에서 투자와 관련된 모든 책을 읽었다. 그리고 책으로 부터 얻은 투자 지식이 주식 투자를 함에 있어서 굉장히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에 감명 받은 나는, 20대 때 주식과 관련된 거의 모든 책을 읽었다. 일주일에 두 권 정도씩 거의 10년 간 주식과 관련된 책을 읽은 것이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은 알겠지만, 책을 많이 읽는 것 자체가 그 분야의 지식을 늘려주진 않는다. 지식을 늘리기 위해서는 오히려 훌륭한 책 한 두권을 10번, 20번 읽는 것이 훨씬 낫다.
한 분야에 대해 너무 많은 책을 읽으면 생기는 또 하나의 문제점은 그 분야에 대해 저평가하게 된다는 것이다. 너무 쉽다고 생각하게 된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책은 초보자를 대상으로 출판된다. 수요와 공급 측면에서 잠재적 구매자가 최대한 많아야 되기 때문이다. 이런 책을 읽다보면 너무 쉽다. 그러다보니 이제는 조금 어려운 책도 읽고 싶어진다. 그런데 아무리 심도 있는 책을 고른다고 해도 그 책 내용의 절반 이상은 초보자 대상으로 쓰여진다. 책을 10권, 100권 읽다보면 반복되는 내용으로 인해, 마치 그것이 그 분야의 전부인 것 마냥 오해하게 된다.
만약, 내가 10년, 20년 전으로 돌아가 주식에 대해 처음으로 공부를 시작하게 된다면, 책은 최대한 적게 읽을 것이다. 유명하고 그 분야의 고전으로 평가 받는 책을 1년에 한 두 권으로 정해, 그 책만 10번이고 20번이고 읽을 것이다. 반복해서 읽음으로써 책의 내용도 훨씬 더 잘 기억에 남을 것이고, 저자의 철학도 오해 없이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두번째 실수, 최신 트렌드에 매몰되다.
또 하나의 실수는, 바로 최신 뉴스, 새로운 정보, 새로운 소식에 빠져들었던 것이다. 최신 트렌드를 좇는 것이 사실 나쁜 것만은 아니다. 많은 투자자들이 최신 트렌드를 투자에 접목시켜 성공적인 수익률을 기록한다. 변화하는 세상에서 저평가된 산업과 기업을 남들보다 빠르게 찾아 투자하여 큰 수익을 올리는 것이다. 변화를 남들보다 빠르게 감지하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가 최신 트렌드를 추적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트렌드를 좇다보면 몇 가지 실수를 하게 된다. 우선, 거시경제의 늪에 빠지기 쉽다. 거시경제가 어떻게 변할 것인지에 따라 주식시장은 매우 빠르게 반응한다. 조금만 경기 불황이 예상되어도 주식 시장은 신속하게 그 예상을 반영하고, 호황이 예상된다는 소식과 함께 주가는 바로 오른다. 그래서 마치 거시경제가 주가를 예측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요소처럼 보이기도 한다. 물론, 거시경제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단, 주식 시장이 거시 경제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거시 경제가 주식 시장을 따른다는 걸 명심해야 할 것 같다. 주식 시장은 거시 경제를 예측하는 투자자들의 컨센서스가 반영된 시장이다.
주식시장 예측은 거시 경제를 예측하는 단순한 게임이 아니라, 시장 참여자들의 “거시 경제에 대한 컨센서스”가 맞을 것인지 틀릴 것인지를 예측하는 게임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최신 트렌드에는 가치가 없다. 최신의 트렌드는 주식 시장에 바로바로 반영된다. 물론 국내 투자를 하는 경우에는 최신 트렌드(기술 트렌드)의 변화가 중요하다. 기술 변화에 따라 크게 수혜를 보는 중소기업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기술이 어떤 방향으로 변할 것이라는 트렌드를 이해하는 건 국내 주식 투자의 시작이다. 하지만 미국 투자를 주로 하는 필자로써는 기술 트렌드를 파악하는 것보다, 경제적 해자를 바탕으로 장기간 성장해나가는 기업을 분석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가장 중요한 세번째 실수
필자의 가장 뼈아픈 실수는 바로, 기업 분석에 충분한 시간을 쏟지 않은 것이다. 당연하지만 생각보다 만연한 세번째 실수는 앞서 이야기한 첫번째(투머치 독서), 두번째 실수(뉴스 중독)와 같은 맥락에서 발생한다. 여기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해보자.
우선, 기업 분석은 어렵다. 뭐를 어떻게 해야할 지도 모르겠다. 너무 추상적이고 기업 분석을 어떻게 해야한다는 정해진 프레임이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오래 걸린다. 기업 분석은 정말 소모적인 작업이다. 하나의 투자를 하기 위해 몇 개의 경쟁 기업과 산업을 공부해야 한다. 힘들기 때문에 투자자들은 기업 분석을 회피한다. 여기에 사용되는 회피 수단이 바로, 독서와 최신 트렌드에 매몰되는 것이다.
독서는 편하다. 비슷비슷한 내용의 글은 잘 읽힌다. 나도 곧 투자를 잘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뉴스를 읽고 최신 트렌드를 파악하는 것은 쉽다. 읽기만 하면 된다. 거시 경제가 주식 시장에 미치는 영향도 재미있다. 꽤 논리적이다. 이제 나는 투자할 준비가 된 것만 같다.
이런 식의 자기 자신을 속이는 행위, 힘들지만 해야만 하는 기업 분석 대신, 독서와 뉴스처럼 쉬운 길로 빠지는 실수는 굉장히 흔하다. 기업 공부를 게을리한 채 독서만 하고 뉴스만 읽고 투자에 나서는 것은 굉장히 위험하다. 필자 또한 이 실수의 피해자였다.
마무리하며
물론, 이론적으로는 모두가 안다. 좋은 투자 습관과 장기적인 투자 수익을 위해서는 기업 분석이 필수라는 것을. 하지만 안한다. 기업 분석은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쉬운 독서와 뉴스 읽기로 빠진다. 투자 철학을 공부하고 최신 뉴스를 소비한다. 수험생들이 스스로 공부 하지 않고 인터넷 강의 듣기에 중독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인간은 보고, 듣고, 읽는 것으로 부터 절대로 배우지 못한다. 직접 몸으로 부딪혀가며, 실제로 그것에 푹빠져 허우적대야 비로소 조금씩 배우는 것이다. 아마 어떤 분야에서 상위 1% 이상 높은 자리까지 오른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다 똑같이 대답할 것이다. 그 분야가 공부던, 축구던, 사업이던, 건설 노동자던 마찬가지다. 하물며 킥보드를 또래들에 비해 유독 잘타는 아이들에게도 물어보자. 대답은 모두 같을 것이다.
필자의 경험으로 깨달은 비밀을 하나 공개한다. 성공으로 가는 비밀이다. 취미, 직업 상관 없이 어떤 것을 잘 하려면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비밀이다. 누구에게도 알려주지 않았다. 나만 알고 싶은 비밀이다.
그 비밀은 바로 “가장 하기 싫은 것을 꾸준히 하는 것”다.
무언가를 잘하기 위해 해야하는 일이 10가지 정도 있다고 하자. 축구를 예로 들면, 1. 볼트래핑, 2. 패스, 3. 킥, 4. 슈팅, 5. 개인기, 6. 하체 운동, 7. 스텝 연습, 8. 러닝, 9. 웨이트트레이닝. 이미 눈치를 챘겠지만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은 1번부터 9번의 순서로 재미있어 한다. 하지만 경쟁력의 핵심은 아무도 하고 싶지 않은 것을 하는 데 있다. 아무도 하고 싶지 않은 것을 해야 남들보다 앞서 나갈 수 있다. 아마추어 축구 동호인은 공감 못할 수도 있겠지만 주변에 프로 레벨까지 간 친구가 있다면 물어보자. 이것 만큼은 무조건이다.
주식 투자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투자 관련 서적, 투자 철학에 매몰되는 것. 투자를 더 잘하기 위해 월스트릿저널을 구독하고, 블룸버그를 구독하는 것. 물론, 이런 것들이 모두 투자에 악영향을 미치는 건 아니다. 모두 필요한 과정이다. 단, 이런 행동과 사고방식이 기업 분석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많이 사용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성공 투자의 정답은, 가장 하기 싫은 기업 분석을 꾸준히 하는 것이다.
체험에서 얻어지는 노하우 유익 했습니다, 읽고 기록해 두고 투자 잘 활용토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재미있고 유익하게 읽으셨다니 제가 더 감사합니다^^
완전 공감합니다. 기업분석 꾸준히 하기에 더해서, 뭔가가 더 있을 것 같은데 알송달송하네요.
네 뭔가 최고 효율의 길이 있을 거 같긴 한데, 결국 지치지 않고 꾸준히 오래, 포기하지 않고 하는 방법이 최고인 듯 싶습니다.^^